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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청소부-대본

by 챠챠ss 2025. 10. 7.

챕터 1: 새벽 다섯시의 천사

새벽 네시 오십분, 서울 한복판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뜻한 이불 속에서 꿈을 꾸고 있을 시간이었죠. 하지만 유진병원 직원 출입구 앞에는 벌써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채수연, 쉰일곱 살의 여성이었어요. 그녀는 낡은 청소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옷깃은 여러 번 빨아서 색이 바래 있었고, 소매 끝은 실밥이 조금 풀어져 있었어요. 운동화도 오래 신어서 발끝 부분이 닳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연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없었어요. 오히려 맑은 눈빛으로 병원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철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습니다. 수연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복도를 걷는 그녀의 걸음걸이는 놀랍도록 가벼웠습니다. 삼십년 동안 매일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의 여유가 느껴졌죠.

"오늘도 오셨네요, 수연 할머니."

야간 근무를 마치고 나가는 간호사가 밝게 인사했습니다. 수연은 따뜻한 미소로 답했어요.

"그럼요, 삼십년째를 이 자리 지키고 있죠."

수연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단단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어요. 마치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을 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 같은 것이었습니다.

중환자실로 향하는 복도는 조용했습니다. 환자들은 대부분 잠들어 있었고, 의료 장비의 작은 소리만이 들렸어요. 수연은 작은 관리실에서 청소 도구를 꺼냈습니다. 걸레, 소독약, 물통. 모든 것을 정확한 순서대로 준비하는 모습이 마치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어요.

청소가 시작되었습니다. 수연의 손놀림은 놀라울 정도로 세심했어요. 다른 청소부들이 대충 닦고 지나가는 곳도, 그녀는 꼼꼼하게 살폈습니다. 복도 모서리의 먼지, 벽면의 작은 얼룩, 화장실 타일 사이의 곰팡이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았죠.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의료 장비를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겉만 닦고 지나갔지만, 수연은 달랐어요. 마치 그 기계의 구조를 완벽하게 알고 있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각 부분을 정성껏 닦아냈습니다. 버튼 하나, 전선 하나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어요.

"수연 할머니, 역시 꼼꼼하세요."

순찰을 돌던 간호사가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수연은 고개를 들어 미소 지었어요.

"환자분들이 계신 곳인데, 깨끗해야죠."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지만, 그 속에는 깊은 책임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일이 끝날 무렵, 수연은 한 병실 앞에서 잠시 멈춰 섰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이 보였어요. 보호자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의자에서 졸고 있었습니다. 수연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노인의 손을 살짝 잡았습니다. 차가운 손이었어요. 수연은 그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며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힘내세요. 곧 나아지실 거예요."

노인은 잠결에 작게 미소 지었습니다. 보호자 여성이 눈을 떴어요. 수연을 보더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수연은 고개만 끄덕이고 조용히 방을 나왔습니다. 그녀의 눈가도 촉촉했어요. 삼십년 동안 이런 순간을 수없이 겪었지만, 여전히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 순간, 수연의 머릿속에 오래된 기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삼십년 전, 법정이었어요.

스물일곱 살의 젊은 수연이 떨리는 몸으로 서 있었습니다. 검은 법복을 입은 판사가 높은 곳에 앉아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수연의 손은 계속 떨렸습니다. 옆에는 남편 박정호가 냉정한 표정으로 서 있었죠.

"양육권은 부에게 인정합니다."

판사의 목소리가 법정에 울려 퍼졌습니다. 수연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어요.

"제발요, 판사님. 민석이는 제가..."

수연이 앞으로 나가려 했지만, 법정 경위가 그녀를 막았습니다. 판사는 차가운 눈으로 수연을 내려다봤어요.

"청소부 월급으로 어떻게 아이를 키우시겠습니까?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셔야죠."

남편 정호가 비웃듯 말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엄마 자격 있어?"

법정 한쪽에 일곱 살 민석이가 서 있었습니다. 아이는 엄마를 향해 작은 손을 뻗었어요.

"엄마..."

하지만 정호가 아이의 손을 낚아챘습니다. 민석이는 뒤돌아보며 울었어요. 수연도 무릎을 꿇고 통곡했습니다. 눈물이 바닥에 떨어져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었죠.

법정 밖, 차가운 복도에 홀로 남은 수연은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눈빛이 변했어요. 슬픔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단단한 결심이 자리 잡았습니다.

'반드시 성공할 거야.'

수연은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하지만 민석이가 돈 때문에 날 찾게 하진 않을 거야. 엄마로 날 찾을 때까지, 난 기다릴 거야.'

현재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아홉시, 청소가 끝났어요. 수연은 작은 탈의실로 들어갔습니다. 청소복을 벗고 사물함을 열었어요. 그 안에는 깔끔한 정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고급스러운 원단의 검은색 재킷과 치마였죠.

샤워를 마친 수연은 거울 앞에 섰습니다. 젖은 머리를 말리고, 단정하게 뒤로 묶었어요. 가벼운 화장을 했습니다. 립스틱을 바르고, 눈썹을 정리했죠.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었습니다.

거울 속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어요. 십분 전의 청소부는 온데간데없고, 세련된 직장 여성이 서 있었습니다. 수연은 자신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작게 미소 지었어요.

병원 뒷문으로 나갔습니다. 주차장 한쪽에 고급 세단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검은색 제네시스였습니다. 운전석에서 나이 지긋한 기사가 내려 문을 열어주었죠.

"회장님, 오늘 일정 말씀드릴까요?"

기사의 목소리는 공손했습니다. 수연은 뒷좌석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강남 메디컬타워로 가죠."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습니다.

삼십분 후, 차는 강남 한복판의 현대적인 건물 앞에 섰습니다. 메디컬타워. 이십오층짜리 유리 건물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어요.

수연은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이십오층 버튼을 눌렀죠.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올라갔어요. 문이 열리자, '수연의료재단'이라는 금색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직원들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수연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지나갔어요. 복도를 걸어 이사장실 문을 열었습니다.

넓은 방이었어요. 큰 창문으로 서울 전경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정리되어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상패들이 가득했죠. '의료계 공헌상', '사회공헌 대상', '모범 기업인상'.

비서 김미영이 노트북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이사장님, 오늘 유진병원 확장 프로젝트 보고 있습니다."

수연은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며 대답했어요.

"좋아요. 그리고 오후에는 건물 임대 심사가 있죠?"

"네, 성형외과 세 곳이 신청했습니다."

수연은 천천히 돌아서서 비서를 바라봤습니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어요.

"심사 철저히 하세요. 인성까지."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갔습니다. 수연은 다시 창밖을 바라봤어요. 저 멀리 유진병원이 보였습니다. 몇 시간 전 자신이 청소하던 그곳이었죠.

수연은 의자에 앉았습니다. 책상 서랍을 열고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냈어요. 일곱 살 민석이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수연은 사진을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습니다.

"민석아, 엄마는 네가 진심으로 날 찾을 때까지 기다릴 거야."

창밖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어요. 청소부 할머니 수연과 재단 이사장 수연.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여자의 긴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챕터 2: 삼십년 만의 재회

30년 전,

2022년 3월, 초라한 장례식장이었어요. 관 앞에는 꽃 몇 송이만 놓여 있었습니다. 문상객은 거의 없었죠. 박민석은 검은 상복을 입고 빈소 앞에 앉아 있었어요. 그의 나이 서른한 살이었습니다.

영정 사진 속 아버지 박정호는 예순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간암이었어요. 민석은 아버지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죠. 슬픔보다는 허무함이 먼저 밀려왔어요.

'이렇게 쓸쓸하게 가시다니.'

민석은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어요. 친구도 없었고, 친척들과도 연락을 끊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이 이렇게 조용할 수밖에 없었죠.

삼일장을 치르고, 민석은 아버지가 살던 낡은 다세대 주택으로 갔습니다. 짐을 정리해야 했어요. 작은 방 두 개짜리 집이었습니다. 먼지가 쌓여 있었고, 곳곳에 오래된 물건들이 널려 있었죠.

옷장을 열었습니다. 오래된 옷들이 구겨진 채 걸려 있었어요. 민석은 한 벌씩 꺼내며 비닐봉지에 담았습니다. 옷장 제일 안쪽, 낡은 판지 상자가 보였어요. 민석은 그것을 꺼냈습니다.

상자를 열자, 편지 봉투들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민석은 눈을 크게 떴어요. 적어도 삼백 통은 넘어 보였죠. 모두 미개봉 상태였습니다.

첫 번째 편지를 집어 들었어요. 봉투는 누렇게 바래 있었습니다. 발신인 이름을 보는 순간, 민석의 손이 떨렸어요.

채수연.

엄마였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뜯었습니다. 오래되어 바스러질 것 같은 편지지를 조심스럽게 펼쳤어요. 삐뚤삐뚤한 글씨가 보였습니다.

'민석아, 엄마야. 오늘이 네 여덟 번째 생일이구나. 생일 축하해. 엄마는 너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 매일 네 생각을 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니? 밥은 잘 먹고 있니? 엄마가 곁에 없어서 미안해.'

편지는 거기서 끝났습니다. 잉크가 번진 자국이 있었어요. 눈물 자국이었습니다.

민석은 두 번째 편지를 열었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모든 편지에는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어요. 생일 축하 메시지, 격려의 말, 그리움. 그리고 마지막에는 항상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용돈 보냈어. 맛있는 거 사 먹어.'

민석은 편지들을 바닥에 쏟아냈습니다. 삼백여 통의 편지가 사방에 흩어졌어요. 그는 그 속에 주저앉았습니다.

'엄마가... 이렇게 많은 편지를...'

상자 밑바닥에 통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민석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어요. 통장을 펼쳐보니, 삼십년 동안의 입금 내역이 빼곡했습니다. 매달 십만 원씩, 한 번도 빠짐없이. 총액은 일억 이천만 원이었어요.

민석은 무릎을 꿇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미안해요..."

그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편지 한 장을 꽉 쥔 손이 하얗게 질렸어요.

책상 서랍에서 아버지의 메모장을 발견했습니다. 펼쳐보니, 아버지의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민석아, 절대 엄마 찾지 마라. 가난하고 무능한 여자다. 너에게 도움이 안 된다.'

민석은 메모장을 구겨 던졌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아버지가 삼십년 동안 모든 편지를 숨긴 것입니다. 엄마가 보낸 돈도, 편지도, 모두.

"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민석은 주먹으로 바닥을 쳤습니다. 후회가 밀려왔어요. 아버지에게 화가 났지만, 자신에게는 더 화가 났습니다. 삼십년 동안 엄마를 찾지 않은 자신이 너무 미웠어요.

다음 날부터 민석은 엄마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편지 봉투에 적힌 주소를 따라갔어요. 유진병원 근처였습니다. 하지만 그 주소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죠.

병원 안내 데스크로 갔습니다. 젊은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어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채수연이라는 분을 찾는데요. 여기서 일하신다고 들었어요."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 수연 할머니요? 청소하시는 분이시죠. 새벽에 오세요."

민석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엄마가 아직도 청소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삼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어요.

이튿날 새벽 여섯시, 민석은 병원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삼월의 새벽 공기는 차가웠어요. 입에서 하얀 김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민석은 추위를 느끼지 못했어요. 오직 엄마를 만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여섯시 삼십분쯤, 병원 뒷문이 열렸습니다. 청소복을 입은 여자가 나왔어요. 허리가 약간 구부정했고, 머리는 하얗게 세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석은 단번에 알아봤어요.

"엄마..."

민석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수연이 멈춰 섰어요. 천천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민석과 눈이 마주쳤죠.

"민석아?"

수연의 목소리도 떨렸습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어요. 민석은 달려가서 엄마를 안았습니다. 두 사람은 병원 앞에서 한참을 울었어요.

"엄마, 미안해요. 아빠가... 아빠가 편지를 다..."

민석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수연은 아들의 등을 토닥였어요.

"괜찮아, 이제 만났잖아."

수연의 목소리는 따뜻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어요. 기쁨, 슬픔, 그리고 알 수 없는 다른 무언가.

"엄마, 이제 제가 모실게요. 청소 일 그만하세요."

민석이 간절하게 말했습니다. 수연은 고개를 저었어요.

"고마워, 하지만 엄마는 괜찮아."

민석은 엄마의 작은 아파트로 갔습니다. 이십사 평 정도 되는 낡은 아파트였어요. 가구는 오래되었지만 깨끗했습니다. 벽지는 바래 있었고, 바닥 장판도 곳곳이 닳아 있었죠.

"엄마, 여기서 계속 사신 거예요?"

민석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가슴이 아팠어요. 수연은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이며 대답했습니다.

"응, 삼십년째. 여기면 충분해."

민석은 냉장고를 열어봤습니다. 김치, 계란, 두부. 소박한 반찬들만 있었어요. 쌀독에는 쌀이 반도 안 남아 있었습니다.

"제가 더 좋은 곳으로 모셔갈게요."

민석의 목소리에 눈물이 섞여 있었습니다. 수연은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야, 엄마는 이 정도면 행복해."

그녀는 정말로 만족스러운 표정이었습니다. 민석은 이해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민석과 수연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어요. 민석은 매번 용돈을 드리려 했지만, 수연은 항상 거절했습니다.

"엄마는 충분해, 네 미래를 위해 저축해."

수연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어요.

세월이 흘러, 현재가 되었습니다.

민석은 서른네 살이 되었어요.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수연은 여전히 새벽마다 유진병원에서 청소 일을 했어요.

어느 날 저녁, 작은 식당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았습니다. 민석은 불고기를 먹으며 말을 꺼냈어요.

"엄마, 다음 주에 소개시켜드릴 사람이 있어요."

수연은 수저를 놓았습니다. 아들을 바라보며 물었어요.

"여자친구?"

민석은 수줍게 웃었습니다.

"네... 결혼하고 싶어요."

수연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스쳤습니다. 기쁨과 걱정이 섞인 표정이었어요. 하지만 곧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좋은 사람이겠지?"

"네, 엄마도 좋아하실 거예요."

민석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어요. 하지만 그녀의 눈 속 깊은 곳에는 조심스러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제 진짜 시험이 시작되는구나.'

수연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삼십년을 기다렸어요. 이제 며느리가 될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가 진심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인지.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챕터 3: 완벽한 며느리의 등장

강남의 고급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반짝이고, 테이블마다 하얀 테이블보가 깔려 있었어요. 클래식 음악이 조용히 흘러나왔습니다.

민석은 레스토랑 입구를 계속 바라봤어요. 손을 몇 번이나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했습니다. 긴장한 모습이었죠. 수연은 아들 맞은편에 앉아 미소를 지었어요. 그녀는 수수한 베이지색 니트에 검은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가방도 오래된 작은 크로스백이었어요.

오후 일곱시, 레스토랑 문이 열렸습니다. 젊은 여자가 들어왔어요. 한지민, 서른셋의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세련된 회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어요. 목에는 진주 목걸이가 걸려 있었고, 손에는 명품 핸드백을 들고 있었습니다. 하이힐 소리가 또각또각 울렸죠.

민석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손을 흔들며 지민을 불렀어요. 지민은 우아하게 걸어와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수연에게 향했어요. 잠깐 멈칫했지만, 곧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어머님, 처음 뵙겠습니다."

지민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어요. 하지만 수연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지민의 눈이 자신의 옷차림을 훑는 것을요. 그 시선에는 미묘한 실망이 섞여 있었어요.

"반가워요, 지민씨. 민석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수연은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지민은 자리에 앉으며 가방을 옆에 내려놓았어요. 명품 로고가 보였습니다. 수연의 낡은 가방과 대조적이었죠.

웨이터가 메뉴판을 가져왔습니다. 지민은 능숙하게 메뉴를 펼쳐봤어요. 수연은 메뉴를 받아들고 천천히 훑어봤습니다. 가격이 하나같이 높았어요. 스테이크가 팔만 원, 파스타가 오만 원.

"어머님, 편하신 거 주문하세요."

지민이 밝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수연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어요. 수연은 메뉴를 덮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무거나 괜찮아. 민석이가 골라."

민석이 서둘러 주문했습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대화가 시작되었어요.

"어머님은 무슨 일 하세요?"

지민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목소리는 공손했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어요. 수연은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대답했습니다.

"병원에서 청소 일 해. 유진병원."

지민의 손이 잠깐 굳었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포크를 만지작거리던 손이 멈춘 것이에요. 하지만 그녀는 빠르게 표정을 관리했습니다. 다시 미소를 지었죠.

"아, 그러시구나... 오래 하셨어요?"

"삼십년째야."

수연의 대답은 담담했습니다. 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는 척했어요.

"대단하세요!"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이미 변해 있었습니다. 기대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실망이 자리 잡았어요. 수연은 모든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삼십년 동안 수많은 사람을 봐온 그녀였어요. 지민의 미묘한 표정 변화, 살짝 떨린 목소리, 어색하게 웃는 입꼬리. 다 보였습니다.

"지민씨는 무슨 일 해요?"

수연이 물었습니다. 지민은 이번엔 자신감 있게 대답했어요.

"저는 성형외과 의사예요. 곧 개원 준비 중이에요."

"어디에 개원하려고?"

"유진병원 근처면 좋을 것 같아요."

지민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유진병원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큰 병원이었어요. 그 근처에 병원을 열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죠. 수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래, 좋은 위치네."

식사가 끝나고 헤어질 때, 지민은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인사했습니다. 하지만 수연은 알고 있었어요. 이 여자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일주일 후, 지민의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날이었습니다. 강남의 고급 아파트였어요. 오십 평이 넘는 넓은 집이었습니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자, 호화로운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어요. 대리석 바닥, 값비싼 그림들, 최신형 가전제품들.

지민의 아버지가 나왔습니다. 한 회장, 예순 살의 내과 원장이었어요. 그는 비싼 정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한 여사도 나왔죠. 목에는 진주 목걸이, 손에는 큰 반지를 끼고 있었어요.

"어서 오세요."

한 회장이 인사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수연의 옷차림을 훑고 있었어요. 수연은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수수한 옷차림이었습니다. 한 여사의 입꼬리가 살짝 내려갔어요.

거실에 앉았습니다. 한 여사가 차를 내왔어요. 비싼 찻잔이었습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죠. 한 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사돈... 어르신께선 무슨 일을?"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전혀 없었어요. 이미 지민에게 들은 것 같았습니다. 수연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어요.

"병원 청소 일 합니다."

싸늘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한 회장과 한 여사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어요. 지민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님은 정말 성실하세요. 삼십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셨어요."

하지만 한 회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습니다. 한 여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아... 네..."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식사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어요. 수연은 조용히 식사를 했습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었어요.

식사 후, 한 회장이 지민을 따로 불렀습니다. 복도로 나간 두 사람의 대화가 희미하게 들렸어요.

"너 정말 이 결혼 할 거야?"

한 회장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습니다.

"네, 민석씨 좋아해요."

"시어머니가 청소부라니... 우리 체면이..."

"괜찮아요, 제가 잘할게요."

지민의 대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어요.

수연은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표정은 평온했어요. 하지만 눈빛은 날카로웠습니다.

그날 밤, 수연은 혼자 집에 앉아 있었습니다. 거울 앞에서 오늘의 일들을 되돌아봤어요. 지민의 얼굴, 지민 부모의 표정, 모든 것이 선명했습니다.

노트북을 켰습니다. 검색창에 한지민이라고 입력했어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의대 수석 졸업, 성형외과 전문의, 우수 논문상. 화려한 경력이었어요.

하지만 수연은 더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몇 번의 클릭 끝에, 은행 대출 상담 기록을 찾아냈어요. 지민이 개원 자금으로 삼억 원을 대출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기록이었습니다. 신용 등급이 낮았던 거죠.

"역시... 돈이 필요하구나."

수연은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화면을 끄고 창밖을 바라봤어요.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한 달 후, 민석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결혼하기로 했어요."

수연은 진심으로 미소 지었어요.

"축하한다."

"엄마, 결혼하면 저희랑 같이 살아요."

민석의 말에 수연은 놀랐습니다.

"아니야, 너희끼리..."

그때 지민이 말했습니다.

"어머님, 저희가 모시고 싶어요."

지민의 눈빛이 반짝였어요. 하지만 수연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 눈빛의 의미를요. 자신의 집을 노리는 눈빛이라는 것을.

수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았어, 같이 살아보자."

지민과 민석은 환하게 웃었어요. 하지만 수연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네 본모습을 보여줘, 한지민.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야.'

그날 밤, 수연은 다시 노트북을 켰습니다. 화면에는 지민의 정보가 가득했어요. 수연은 파일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간단했어요.

관찰 일지.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챕터 4: 동거의 시작

2025년 6월, 소박한 결혼식장이었습니다. 하객은 백 명도 안 되었어요. 대부분 신랑 신부의 직장 동료들이었습니다. 식장 앞줄에 수연이 앉아 있었어요. 깨끗한 한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연두색 저고리에 분홍색 치마였죠. 한복은 오래된 것이었지만, 다림질이 잘 되어 있었어요.

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민의 친구들이 모여서 수군거렸어요. 그들은 모두 의사였습니다. 흰 가운 대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죠.

"신랑 어머니가..."

한 친구가 수연을 힐끔 보며 속삭였습니다. 다른 친구가 물었어요.

"언니, 시어머니 직업이 뭐래?"

지민은 순간 당황했습니다. 손에 든 물잔을 꽉 쥐었어요. 하지만 곧 애매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병원 일 하셔."

"아, 의료인이시네?"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습니다. 지민은 애매하게 미소만 지었어요.

"...그런 셈이지."

수연은 멀리서 이 대화를 듣고 있었습니다. 귀가 밝았거든요. 삼십년 동안 병원 복도에서 일하며 작은 소리도 다 들을 수 있게 되었죠. 지민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다 들었습니다. 수연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어요.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온화했습니다.

일주일 후, 부동산 중개인이 수연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강남의 낡은 아파트였어요. 이십사 평짜리 작은 평수였습니다. 벽지는 오래되어 누렇게 변해 있었고, 마루도 곳곳이 긁혀 있었어요.

중개인이 집을 둘러보더니 노트북을 켰습니다. 몇 번의 클릭 후, 그가 말했어요.

"이십사 평인데 시세가 오십억입니다."

지민의 눈이 커졌습니다. 물을 마시려던 손이 멈췄어요.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물었습니다.

"어머님 집이 오십억이에요?"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수연은 담담하게 대답했어요.

"아, 옛날에 싸게 샀어. 청약 당첨됐거든."

지민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오십억이면...' 그녀의 눈에 계산하는 빛이 스쳤어요. 하지만 곧 밝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님, 이 집 파시고 저희랑 넓은 곳에서 같이 살아요."

민석도 거들었어요.

"엄마도 더 편하실 거예요."

수연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지민의 눈빛, 민석의 순진한 얼굴. 모든 것이 보였어요. 수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너희 불편하지 않겠니?"

"전혀요! 가족인데요."

지민이 빠르게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이미 집을 계산하고 있었어요.

일주일 후, 집이 팔렸습니다. 육십오억이었어요. 예상보다 십오억이나 더 높은 가격이었습니다. 강남 재개발 소식이 나오면서 집값이 오른 것이죠.

지민은 홀로 있을 때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이 돈이면 강남 신축에...'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어요.

경기도 분당의 신축 아파트였습니다. 사십 평짜리 넓은 평수였어요. 거실은 탁 트여 있었고, 주방은 최신식이었습니다. 베란다에서는 공원이 한눈에 보였죠.

"와... 너무 좋아요!"

지민이 감탄하며 거실을 둘러봤습니다. 그녀는 이미 가구 배치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어요. 민석도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엄마, 감사해요."

수연은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어요.

"너희가 행복하면 돼."

집값은 칠십억이었습니다. 수연이 오십억을 냈고, 나머지 이십억은 대출을 받았어요. 명의는 민석과 지민 공동으로 했습니다.

방 배정을 할 때였습니다. 안방은 당연히 신혼부부 방이었어요. 그리고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수연이 먼저 말했어요.

"난 작은 방이 편해."

지민은 겉으로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머님께 넓은 방 드려야 하는데..."

하지만 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했어요. '작은 방이 딱이네.' 그녀의 눈이 살짝 반짝였습니다.

첫 이주일은 완벽했습니다. 지민은 모범 며느리였어요. 매일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 시어머니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머님, 주무셨어요?"

목소리는 밝고 부드러웠어요. 수연이 문을 열면, 지민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늘도 병원 가세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저녁에는 시어머니의 발을 주물러드렸습니다. 수연이 소파에 앉으면, 지민이 작은 의자를 가져와 앉았어요. 시어머니의 발을 무릎에 올려놓고 꾹꾹 눌렀습니다.

"어머님, 다리 많이 아프시죠?"

"괜찮아."

"제가 매일 해드릴게요."

지민의 손길은 부드러웠어요. 수연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편안한 표정이었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었어요.

아침 식사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지민이 계란을 풀고, 수연이 김치찌개를 끓였어요. 둘이 나란히 서서 요리하는 모습은 평화로웠습니다.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 정말 맛있어요."

지민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어요.

저녁에는 셋이 함께 TV를 봤습니다. 드라마가 끝나면 민석이 행복하게 말했어요.

"우리 셋이 이렇게 행복할 줄은..."

그의 목소리에는 감동이 묻어 있었습니다. 지민도 남편의 손을 잡으며 미소 지었어요. 수연은 두 사람을 바라봤습니다. 따뜻한 광경이었죠.

하지만 수연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지민이 택배를 받을 때의 모습을요. 명품 쇼핑백이었어요. 로고가 크게 박힌 가방이었습니다. 지민은 서둘러 그것을 방으로 가져갔어요. 수연이 보지 못하게.

또 지민이 전화 통화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어요.

"응, 개원 자금 좀 모였어."

수연은 복도를 지나가다 우연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연이 아니었어요. 수연의 귀는 밝았으니까요.

삼주차가 되었습니다. 변화가 시작되었어요.

새벽 다섯시, 수연이 청소 출근 준비를 했습니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왔어요. 복도를 지나는데, 안방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또 나가시네..."

지민의 목소리였어요. 잠결이었지만, 짜증이 섞여 있었습니다. 수연은 발걸음을 멈췄어요. 귀를 기울였습니다.

"응, 매일 그러시잖아."

민석의 대답이었습니다. 수연은 조용히 현관으로 갔습니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어요. 문을 닫을 때,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습니다. 하지만 눈빛은 달랐어요.

그날 저녁,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지민이 늦게 일어난 것이죠. 수연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지민은 부엌에 서 있었어요.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표정은 피곤해 보였습니다.

"어머님, 아침은 제가 차릴게요."

지민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습니다. 수연은 조용히 대답했어요.

"미안해, 오늘 일찍 나가느라."

"괜찮아요."

지민의 대답은 짧았습니다.

저녁이었습니다. 수연이 병원에서 돌아왔어요. 청소복 냄새가 났습니다. 소독약 냄새였죠. 지민이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어요. 수연이 들어서자, 지민의 코가 살짝 찡그러졌습니다.

"어머님, 샤워하고 나오시죠?"

지민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불편함이 묻어 있었어요. 민석이 당황하며 말했습니다.

"지민아..."

"아니, 소독약 냄새가 너무 강해서요."

지민이 변명하듯 말했습니다. 수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래, 미안하다."

수연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닫고, 옷을 벗었어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봤습니다. 표정은 평온했지만,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혔어요.

하지만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분노도 아니었죠. 그것은 확신이었어요.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확신.

그날 밤, 수연은 노트북을 켰습니다. 화면에 파일을 열었어요. 관찰 일지 삼주차. 타이핑을 시작했습니다.

'시작되는구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모든 것을 기록했어요. 지민의 변화, 민석의 반응, 모든 것을.

'조금 더 지켜보자.'

수연은 파일을 저장하고 노트북을 닫았습니다. 창밖을 바라봤어요.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수연은 작게 미소 지었어요. 차갑고 날카로운 미소였습니다.

 

챕터 5: 균열과 모욕

이개월이 지났습니다. 여름이 깊어지고 있었어요.

어느 날 아침, 수연이 새벽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부엌에는 어젯밤 설거지가 쌓여 있었어요. 접시 다섯 개, 냄비 두 개, 수저들. 수연은 그것들을 보며 잠시 멈춰 섰습니다.

그때 지민의 방문이 열렸어요. 지민이 잠옷 차림으로 나왔습니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눈은 아직 덜 떠진 상태였죠. 하품을 하며 부엌으로 왔어요.

"어머님, 나가시기 전에 설거지 좀 해주세요."

지민의 목소리는 명령조였습니다. 부탁이 아니었어요.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였죠. 수연은 시계를 봤습니다. 다섯시 이십분, 출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알았어."

수연은 가방을 내려놓았습니다. 싱크대로 갔어요. 찬물에 손을 담그며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차가운 물이 손을 시렸지만, 표정은 변하지 않았어요.

지민은 냉장고를 열어 우유를 꺼냈습니다. 컵에 따라 마시며 말했어요.

"그리고 제 옷도 세탁기 돌려주시고요."

지민은 욕실 쪽을 턱으로 가리켰습니다. 세탁 바구니에 옷들이 쌓여 있었어요. 수연의 손이 잠깐 멈췄습니다. 하지만 곧 다시 설거지를 계속했어요.

민석이 방에서 나왔습니다. 상황을 보고 당황한 표정이었어요.

"지민아, 엄마 출근하셔야 하는데..."

"민석씨, 어차피 청소 일 하시잖아요. 집 청소는 당연히..."

지민의 목소리는 짜증이 섞여 있었습니다. 민석은 입을 다물었어요. 수연은 아무 말 없이 설거지를 끝냈습니다.

"괜찮아, 하고 갈게."

수연의 목소리는 평온했습니다. 하지만 손을 닦을 때,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어요. 세탁기에 옷을 넣고, 세제를 부었습니다. 버튼을 눌렀죠. 그리고 조용히 집을 나갔습니다.

현관문이 닫혔습니다. 수연은 복도에 잠시 서 있었어요. 눈을 감았습니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죠. 눈물이 흐르지 않았어요. 대신 눈빛이 차갑게 변했습니다.

일주일 후, 지민이 말했습니다.

"어머님, 오늘 친구들 오는데..."

지민은 휴대폰을 보며 말했어요. 수연은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지민 쪽을 돌아봤죠.

"그래? 뭐 준비해줄까?"

수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했습니다. 지민은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어요.

"아뇨, 그냥... 저녁 때쯤 외출 좀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수연의 표정이 굳었어요. 하지만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래, 알았다."

"감사해요, 어머님."

지민은 빠르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수연은 다시 TV를 봤어요. 화면에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지만, 수연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날 오후, 수연은 집을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거실 바닥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부엌을 정리했어요. 테이블을 닦고, 소파의 쿠션을 정돈했습니다. 그리고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했어요. 김밥, 떡볶이, 튀김. 손님들이 먹을 수 있게요.

다섯시, 수연은 외출 준비를 했습니다. 가방을 들고 신발을 신었어요. 지민이 나와서 말했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목소리는 밝았지만, 눈은 빨리 나가라는 듯했어요. 수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습니다.

여섯시, 지민의 친구들이 왔습니다. 세 명의 여자들이었어요. 모두 의사였습니다. 명품 가방을 들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죠.

"와, 지민아 집 엄청 넓다!"

한 친구가 감탄하며 거실을 둘러봤습니다. 지민은 자랑스럽게 웃었어요.

"그치? 사십 평이야."

친구들이 소파에 앉았습니다. 테이블 위의 음식을 보더니 물었어요.

"이거 다 네가 만든 거야?"

지민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대답했습니다.

"응, 아침에 만들었어."

거짓말이었습니다. 수연이 만든 것이었죠. 친구들은 김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어요.

"시어머니는?"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지민의 표정이 순간 굳었어요.

"외출 중이셔."

"무슨 일 하시는데?"

다른 친구가 물었습니다. 지민은 물잔을 들어 물을 마셨어요. 시간을 끌고 있었습니다.

"...병원 일."

"의료인이시구나?"

지민은 애매하게 웃었습니다.

"...뭐, 그렇지?"

또 거짓말이었어요. 친구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저녁 아홉시가 넘었습니다. 친구들이 떠났어요. 거실은 엉망이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빈 접시들이 쌓여 있었고, 소파에는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었어요. 바닥에는 음료수 자국이 있었습니다.

지민은 TV를 켰습니다. 소파에 누워서 드라마를 봤어요. 설거지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아홉시 삼십분, 수연이 돌아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엉망인 거실이 보였어요. 수연은 잠시 멈춰 섰습니다.

지민이 소파에서 고개를 돌렸어요.

"어머님, 들어오셨어요? 설거지 좀 해주세요."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였습니다. 수연은 가방을 내려놓았어요. 코트를 벗었습니다. 부엌으로 갔죠.

설거지가 산더미였습니다. 접시, 냄비, 컵, 포크, 나이프. 수연은 소매를 걷어 올렸어요. 찬물에 손을 담갔습니다. 하나하나 닦기 시작했어요.

시계를 봤습니다. 열시. 열한시. 자정. 새벽 한시.

거실 청소까지 마쳤을 때는 새벽 한시 삼십분이었습니다. 수연은 소파에 잠시 앉았어요. 손은 빨갛게 부어 있었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어요. 대신 깊은 한숨만 나왔습니다.

다음 날, 지민은 병원 개원 준비로 바빴습니다. 부동산을 돌아다녔어요. 유진병원 근처의 건물들을 살펴봤습니다.

한 건물 앞에서 부동산 중개인이 말했습니다.

"이 근처는 임대료가 억 단위예요."

지민의 얼굴이 굳었어요.

"너무 비싸..."

한숨이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민석에게 말했어요.

"민석씨, 개원 자금 좀 도와줄 수 있어?"

민석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도 여유가 없어..."

"그럼 어머님께 여쭤볼까?"

지민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민석은 고개를 저었어요.

"엄마 월급으로는..."

"집 팔아서 오십억 받았잖아요!"

지민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민석은 당황하며 말했어요.

"그건 우리 집 산 거고..."

"그럼 어머님 적금이라도..."

지민은 계속 따졌습니다. 민석은 대답하지 못했어요. 두 사람 사이에 냉기가 흘렀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수연이 병원에서 돌아왔어요. 청소복 냄새가 났습니다. 소독약 특유의 강한 냄새였죠.

지민이 거실에 있었습니다. 수연이 들어서자, 지민의 코가 찡그러졌어요. 손으로 코를 막았습니다.

"어머님, 소독약 냄새..."

수연은 멈춰 섰습니다. 자신의 옷을 내려다봤어요.

"미안, 샤워하고 올게."

수연은 방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민이 다시 말했어요.

"요즘 매일 그러시네요."

목소리에는 불평이 섞여 있었습니다. 민석이 난처하게 말했어요.

"지민아, 엄마 일 특성상..."

"청소부는 좀 그렇죠 뭐."

지민이 중얼거렸습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수연은 다 들었어요. 수연의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천천히 지민을 돌아봤어요.

"..."

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이 변했어요. 차갑고 날카로워졌습니다. 하지만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죠.

"그래, 미안하다."

수연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닫았어요. 샤워를 했습니다. 뜨거운 물이 몸을 타고 흘러내렸어요. 수연은 타일 벽에 기댔습니다. 조용히 울었어요. 소리 없이, 눈물만.

그날 밤, 지민과 민석의 대화가 들렸습니다. 수연은 방 안에 있었어요. 문틈으로 소리가 새어 들어왔습니다.

"자기야, 솔직히 어머님 때문에 불편해."

지민의 목소리였습니다.

"...나도 좀 그래."

민석의 대답이었어요. 수연의 손이 꽉 쥐어졌습니다.

"네ㅐ ㅊ친구들ㄹㅎㄴ제 친구들한테 뭐라고 소개해요?"

"...미안."

"우리끼리 살면 안 될까요?"

지민이 물었습니다. 민석은 한참 침묵했어요.

"...엄마한테 어떻게 말해."

"제가 말할게요."

지민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수연은 문 뒤에 서서 모든 것을 들었습니다.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어요. 하지만 곧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습니다.

노트북을 켰습니다. 파일을 열었어요. 관찰 일지. 타이핑을 시작했습니다.

'관찰 완료. 본색 확인.'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모든 것을 적었어요. 하녀 취급, 친구들 앞에서의 거짓말, 소독약 모욕, 민석의 변화. 모두.

파일을 저장했습니다. 휴대폰을 들었어요. 전화를 걸었습니다.

"김 비서, 내일 회의 잡아줘."

수연의 목소리는 차가웠습니다. 더 이상 따뜻한 어머니가 아니었어요. 재단 이사장이었습니다.

"이제 준비해야겠어."

수연은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있었어요. 그녀의 눈에도 차가운 빛이 반짝였습니다.

시험은 끝났습니다. 이제 심판이 시작될 것입니다.